지구는 지금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구는 점점 더워졌고, 바다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해수면의 상승은 더 이상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선 해안을 뒤로하고 삶의 터전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봐야 할 때입니다.
해수면 높이 변화 (출처: Jennifer S. Walker, Robert E. Kopp, Christopher M. Little & Benjamin P. Horton)
해안에 형성된 문명, 그리고 그 위협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대부분의 주요 문명과 도시들은 강과 바다를 끼고 형성되어 왔습니다. 해안가는 교통과 무역, 식수, 어업 등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 조건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해안 100km 이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글로벌 대도시 중 상당수가 해안선 근처에 밀집해 있습니다. 도쿄, 뉴욕, 런던, 상하이, 뭄바이, 서울... 해수면 상승은 곧 인류의 핵심 거점 도시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현실이 된 위기
해수면 상승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구체적인 피해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투발루, 몰디브와 같이 해발고도가 매우 낮은 국가는 바닷물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으며, 일부 섬 국가는 국가 자체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UN은 2050년까지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이 2억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바닷물에 밀려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해수면이 내륙으로 침투하면서 지하수와 농지가 염분에 오염되어 식량 생산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해안 도시들의 지하철, 전력망, 정수시설 등 핵심 인프라 역시 점차 침수 위협에 노출되고 있으며, 인구 밀집도가 높은 대도시일수록 피해 규모는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호소하기 위해 바닷물에서 연설하고 있는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교장관 (출처: Ministry of Justice, Communication and Foreign Affairs, Tuvalu Government 공식 페이스북)
가팔라지는 곡선, 그리고 양의 되먹임 고리
문제는, 이러한 해수면 상승 추세가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연간 약 1.4mm의 상승이 관측되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승 속도는 연간 3.4mm 이상으로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20년 사이의 상승률은 과거 100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죠.
지구 평균 기온 역시 산업혁명 이전보다 1.1~1.2도 상승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이 온도 상승이 해수면 상승을 더욱 가속화하는 양의 되먹임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따뜻해질수록 극지방의 빙하가 더 빠르게 녹고, 이로 인해 해수면은 더욱 상승합니다. 해빙 면적이 줄어들면 태양빛을 반사하는 알베도 효과는 감소하고, 더 많은 열이 바다에 흡수되어 다시 온도를 높입니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단순한 직선 상승이 아닌, 점점 가팔라지는 곡선 상승을 만들어냅니다.
양의 되먹임 고리 (출처: ChatGPT 생성)
한국의 미온적인 대응, 그 이유는?
한국은 해안선이 14,000km에 달하는 반도 국가입니다. 그럼에도 해수면 상승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은 미온적입니다. 장기적인 비전보다 당장의 표와 경기 부양이 우선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 위기 문제는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대부분 국민들의 인식자체도 해수면 상승을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여기며, 우리 해안도시의 실질적 위기감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관심과 이해가 낮은 상황에서는 정책적 동력도 쉽게 확보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부동산 문제도 엮여있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은 국민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만약 해수면 상승의 위험이 본격적으로 공론화 되기 시작한다면, 해안 지역의 부동산 가치 하락을 불가피 해지며 이는 시장 불안과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을 불러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인과 언론, 지자체 등은 해수면 상승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루거나 외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한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움직이게 하려면
우리는 지금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은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조용한 재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갇혀 적극적인 대응을 미루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구조적 정책과 장기적인 기후 전략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과 요구가 먼저입니다. 기후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국가적 우선과제로 끌어올리는 힘은 결국 시민의 눈과 목소리에서 나옵니다. 바닷물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지금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